'엄마를 부탁해'의 엄마는 작가와 비슷한 고장의 어머니인 시어머니를 그대로 떠올리게 했고, 그래서 남편에 대해 조금 생각을 했다. 남편과 동향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면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은 엄연히 한 공간에 있지만 사실은 다른 배경, 다른 정서.
'외딴방'은 고등학교 때 읽었던 것 과는 완전히 느낌이 달랐다. 게다가 '엄마를 부탁해'를 읽고 바로 읽으니 '외딴방 20년 후' 같이 느껴지기도 했고.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는 재미없다는 주변의 평을 많이 듣고 봐서인지, 오히려 괜찮았다. 한국 회고문학 버전 '상실의 시대'랄까. 오히려 그런식으로 보니 청춘의 허무나 상처등이 다 그럴만한 의미가 있어서 훨씬 재미있었다. 그렇게 청춘에는 청춘과 동의어로 사용될만한 친구들이 있지.. 그런 생각. 그러면서 내 청춘에는 누가 있었을까를 생각해봤다. 내 청춘의 풍경을 회상해 보면 CC라는 오해를 자주 받기도 했던 친한 이성친구 L이 있고, 수업시간 토론을 하며 설전을 벌이다 전혀 알 수 없는 이유로 친해져버린 S가 있고, 남자친구였던 K가 있다. 가만히 그 시절을 생각하는 내 머리속을 들여다보면 소설 못지않게 스펙타클(?)하고 총천연색이다. 그리고 제일 좋은 것은 그들이 그 시절에 박제되지 않고 계속해서 내 곁에 있다는 것. L은 여전히 나와 가장 친한 이성친구이며, S는 멀리있긴 하지만(많이 멀다. -_-;;) 여전히 연락을 지속하고 있다.
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에서 가장 생경한 표현은 바로 '태생지'라는 단어와 서울을 지칭하는 '이 도시'라는 말이다. '고향'이라는 말 대신 '태생지'라는 말을 쓴 것은 이미 작가에게 서울이 심정적으로 고향이 아닌 것은 또 아니기 때문에 굳이 정읍을 '고향'이라고 부르지 않고 '태생지'라고 부르는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서울을 굳이 또 '이 도시'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서울이 '그냥 서울'이 아니라, 제 3의 도시를 나타내는 '그 서울'도 아닌, '이 도시'라는 것은 서울에 대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묘한 거리감을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를 예로 들어보면, 나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서울에서 자랐기에 서울이 그저 원래 부터 있던 그냥 서울이지 굳이 '태생지'라고 분류할 필요가 없으며, 서울 말고 다른 도시야 다 나에겐 제3의 도시인 나에겐 굳이 서울이 '이 도시'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남편에겐 서울이 '이 도시'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서 산 시간이 태생지에서 산 시간보다 길어져서 태생지보다 오히려 더 익숙하지만, '그냥 당연히 서울'이 아니라 어딘가는 이질적인 도시일테니 말이다.
